네 1943년엔 막을수 없었읍니다.. 정치

1943년에 미국은 일본과 한반도 사이의 해상교통을 막을 수 없었는가.

미국잠수함이라는 팩트를 제외하고는 모든것이 추측에 불과하시더군요..우리 도요다다이쥬(창씨개명 김대중 제갈대중등)이 그렇게 비겁하셨겠습니까?

잠수함 두어척의 초계항행은 제해권과 상관이 없습니다..당시 대한해협의 제해권은 구일본해군이 가지고 있었습니다..아프간에 날아가는 샘물교회를 보셨지요?재일동포들도 아시지요?그들도 1945년까지 아니 일본패망직전까지 일본에 들어오셨읍니다..물론..강제징용당한 분들을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대한해협에 초계항행으로 진입한건 미잠수함 와후(wahoo)호였습니다..그럼 와프호의 행동을 보기로 하겠습니다..대만해협과 버하이만에서의 초계는 상관이 없었음으로 대한해협에서 활동하였던 제6차 제7차 초계항행을 보겠읍니다...

네 보다싶이 대한해협초계를 시작한 6차 7차에서는 콘론마루(곤륜마루)외엔 그렇다할 전과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와프가 처음 대한해협에 침투한 배가 아닙니다..Plunger라는 배가 처음 배가 되겠읍니다..

그런데 이런 휘황한?전과를 올리면서도 잠수함에 의한 봉쇄?를 실시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이였을가요.?

바로 와후호때문이였습니다.

부관연락선을 격침한후 와후호는 허겁지겁 도망칩니다..그리고 또다시 소우야해협으로부터 일본해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나..불핼하게..이렇게 됩니다.

네 와후는 격침당합니다..그리고 미쿡은 겁쳐들어먹고..무려 1945년 6월까지 동해에서의 잠수함작전을 중지합니다..해상봉쇄는 기뢰를 이용하였다고 이미 말씀 올렸읍니다..잊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삿갓님의 답글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즉슨..도요다다이쥬(창씨개명 김대중 제갈대중 등)이 근무한 해운회사는 해군을 위하여 복무한것이 되겠읍니다..

이런 소지가 있었으니 도요다다이쥬(창씨개명 김대중 제갈대중 등)가..센세이 도요다다이쥬데쓰할수 있었을것 같습니다..물론 독도를 감히 공동수역에도 포함시킬수가 있었겠읍니다..

으이구..잘도 봉쇄하였읍니다..1945년 6월까지 운항을 하셨군요..일본 오시려면 충분히 오실수도 있었겠읍니다..대학입학을 위한 민간인수송은 빽이 없이도 가능은 하였읍니다..님이 지금 착각하고 있는것은 당시의 부관연락선이 국제선인것으로 생각하고 있는것입니다.

관부연락선은 국내선이였음으로..민간인도 충분히 탈수 있었던 배였읍니다..

어쨌거나 님과 삿갓이요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오랜만에 조금이나마 진지하게 글을 썼네요..삿갓이요님은 도요다대중의 해운회사가 일본해군의 하청업체였다는 사실을 저에게 알려준 셈이고요..

동맹국과 독립군광복군들에 엄청 피해를 주었겟습니다..친일파쇄키 김대중씨가 말입니다.